GPT가 나보다 기획을 잘할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라고 믿었던 건데, 이제는 그것조차 AI가 더 잘한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
처음엔 도구라고 생각했다. GPT가 등장했을 때, 나는 그걸 ‘도와주는 존재’쯤으로 여겼다. 아이디어가 막힐 때 힌트를 주고, 기획서를 다듬어주는 조력자. 그 정도였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하지 않은 기획서가 나보다 더 설득력 있게 완성되어 있었다. 논리도 정확했고, 흐름도 매끄러웠다. 마치 내가 그동안 해온 일을 완전히 이해한 듯한 결과물이었다.
그 순간,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내가 기획자라고 믿었던 정체성이 조용히, 아주 정교하게 대체되고 있다는 감각.
‘기획자’라는 이름이 흔들릴 때
기획은 단순히 글을 쓰는 일이 아니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 어떤 구조로 전개할 것인지, 무엇을 강조하고 어디에서 감정을 터뜨릴지— 그 모든 것을 설계하는 사람, 그게 바로 기획자라고 믿었다.
나는 그 안에 ‘나’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느낀 것, 내가 고민한 것, 내가 보고 해석한 것들이 기획 안에 녹아 있어야 의미가 생긴다고 믿었다.
하지만 GPT는 그걸 너무 쉽게 해냈다. 내가 한참을 고민했던 문제를, 몇 초 만에 더 명확하고, 더 간결하게 제시했다.
그 결과를 보고 있자니 내가 ‘기획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획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내가 만든 것보다 GPT가 만든 것에 더 감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 나는 묻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AI가 모든 기획을 대신하게 될 때, 나는 어떤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기획이라는 감정 – 왜 인간은 기획하고 싶어 하는가?
기획은 정보의 배열이 아니다. 기획은 감정의 시작이다.
나는 어떤 장면을 떠올리며 울컥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의 말을 들으며, ‘아, 이걸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기능도 아니고, 논리도 아니고, ‘어떤 감정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한 기획이었다.
“기획자는 결국, 어떤 감정을 어떻게 꺼내 보여줄지 고민하는 사람이다.”
GPT는 잘 정리한다. 정확하게 분석한다. 하지만 그건 **‘정리된 마음’이지, 살아 있는 마음은 아니다.** GPT는 공감하지 않는다. 좋아하지도, 분노하지도, 설레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는 한다. 나는 느낀다. 그래서 움직인다.
느낀다는 것은 방향을 갖는다는 것
기획은 방향이다. ‘왜 이것을 지금 말해야 하는가’라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논리가 아니라 감정에서 출발한다.
- 지금, 이 메시지를 꺼내야 한다는 강박
- 사람들이 어떤 장면에서 움찔할지 이미 알고 있다는 직감
- 어떤 흐름이 좋고, 어떤 구성은 지루할 것이라는 느낌
그건 어디에서도 배우지 않은 감각이었다. 그건 ‘살아 있는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리듬이었다.
“내가 하는 기획에는, 내가 살아온 시간이 들어 있다.”
GPT는 ‘좋은 기획서’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이 기획이 왜 중요한가’는 대답하지 못한다. 그건 내가 해야 할 몫이다. 내가 느꼈기 때문에, 내가 설계해야 하는 이유다.
완벽한 기획보다 중요한 것 – 틈과 어긋남이 만드는 창의성
GPT는 실수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정제되고, 흐름도 부드럽고, 문법도 완벽하다. 어쩌면 ‘기획서’라는 포맷 안에서는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완벽한 기획이, 정말 좋은 기획일까?’
우리가 어떤 기획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은 늘 예상과 다른 무언가가 등장했을 때였다. 구조가 조금 어긋났고, 메시지가 거칠었지만 그 안에 사람의 숨결이 느껴졌을 때였다.
“이게 뭐지?” “이렇게 해도 되나?” “왜 이런 구성을 썼지?” …그 어긋남이 기획을 기억에 남게 한다.
GPT는 안정적이다, 하지만 ‘예외’를 만들지 않는다
GPT는 학습한 패턴을 바탕으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그렇기에 GPT는 ‘실패할 확률이 낮은 기획’을 낸다. 그건 강점이기도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진짜 창의성은, 패턴 밖에서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 불필요한 문장을 일부러 넣어 보는 시도
- 비효율적인 순서를 감정 흐름에 따라 바꾸는 실험
- 논리보다 직감을 우선시하는 반(反)합리적 기획
GPT는 이런 시도를 ‘오답’으로 본다. 하지만 인간은 그 ‘오답’ 속에서 새로운 통찰을 찾는다.
“기획이 논리를 따라가면 GPT가 이기고, 기획이 감정을 이끌면 인간이 앞선다.”
기획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기획서를 쓰다 말고, 중간에 포맷을 바꾸기도 했다. 처음 기획의도를 버리고 전혀 다른 구성으로 갈 때도 있었다. 그건 혼란이 아니라, 감정에 반응하는 능력
AI는 실패하지 않지만, 인간은 실패하면서 방향을 다시 조정한다. 그 안에서 ‘사람다운 기획’이 만들어진다.
GPT는 완벽한 기획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기획 그 자체가 설렘이 되는 순간은, 아직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
기획자라는 이름을 지키는 방법 – 질문하는 사람으로 살아남기
GPT는 언제든지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논리적으로, 빠르게, 정확하게. 하지만 그 시작점인 ‘질문’은 누가 만들고 있을까?
나는 어느 날 깨달았다. GPT는 모든 것에 대답할 수 있지만, ‘왜 그걸 묻는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살아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질문이 없으면, 기획도 없다
기획의 시작은 항상 질문이었다.
- “지금 사람들은 왜 이 메시지에 반응할까?”
- “이 콘텐츠가 사람들의 마음에 닿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 “왜 나는 이 이야기를 지금 해야 한다고 느꼈을까?”
이 질문들은 정답을 전제하지 않는다. 그저 ‘무엇이 진짜 중요한가’를 찾기 위한 출발점기획자의 존재 이유
“나는 여전히 답을 찾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 내가 ‘묻고 있다는 사실’이다.”
GPT가 대답하는 세상, 나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이제 더 이상 ‘잘 정리된 기획서’를 쓰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건 GPT가 더 잘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는 여전히 인간의 몫
나는 더 좋은 질문을 만들기 위해 읽고, 보고, 듣고, 흔들린다. 그리고 나의 감정과 호기심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새로운 기획을 시작한다.
“기획자가 되는 방법은 하나다. 계속해서 묻는 사람, 가장 근본적인 질문 앞에 머무는 사람,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되어야 할 사람이다.”
에필로그 – 인간이 기획하는 마지막 이유
나는 더 이상 ‘기획을 잘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대신, ‘기획을 왜 하는 사람’인지를 잊고 싶지 않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 누군가에겐 비효율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나는 내가 느낀 것을 말하고 싶어서, 이 기획을 시작했다.
“GPT가 잘 정리한 것보다, 내가 진심으로 흔들리며 쓴 문장이 누군가에게 더 오래 남을지도 모른다.”
기획은 여전히 사람의 일이다. 왜냐하면 기획은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GPT가 기획을 잘해도 괜찮다. 나는 여전히 묻고 있다. 이 감정은 어디서 왔는지, 이 이야기는 지금 왜 필요한지, 나는 왜 이걸 쓰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 질문이 끝나지 않는 한, 나는 계속해서, 기획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