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오늘도 사장님은 음악부터 틀었습니다[나만의 에세이]

by 아벨주인장 2025. 6. 25.

문을 여는 건 손이지만, 하루를 여는 건 음악이다

가게 셔터를 올리기 전,
나는 늘 스피커부터 켠다.
요즘은 밝고 경쾌한 리듬 위주로 리스트를 짜놨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그게 아니면, 하루를 시작할 기분이 안 나서 그렇다.

매장은 내 삶의 중심이다.
그러니까, 오늘 하루를 잘 버티기 위해서라도
나는 아침부터 내 안의 박자를 맞춰놔야 한다.
매출이 오를지, 손님이 올지, 솔직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망가지지 않는 것, 그게 더 중요하다고 믿게 됐다.

살다 보면, 마음이 먼저 무너지는 날이 있다.
특히 장사를 오래 하다 보면, 숫자보다 감정이 더 사람을 흔든다.
매출이 떨어질 때보다,
그걸 보고 있는 나 자신이 작아질 때가 더 아프다.
그럴 땐, 음악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걸 틀어야 한다.
내 공간만큼은 내가 지키고 싶어서.

그래서 오늘도 스피커 전원을 먼저 켰다.
이 노래가 끝날 즈음엔,
내 마음도 조금은 나아져 있을 거라는 걸 아니까.

신나는 90년대 댄스 음악으로 하루를 여는 이유

사실 음악을 튼다는 게 대단한 루틴은 아니다.
하지만 나에겐 꽤 중요한 시작 의식이다.
가게 문을 열고 불을 켜기 전,
내 손이 가장 먼저 가는 건 블루투스 스피커다.
볼륨을 살짝 올리고,
그때부터 매장은 90년대~2000년대 초 감성으로 물든다.

쿨의 ‘해변의 여인’, 샵의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이정현의 ‘와’, DJ DOC의 ‘런 투 유’까지.
그 시절 음악은 이상하게도 힘이 난다.
어깨가 저절로 들썩이고,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잠깐이라도 “그래, 오늘도 괜찮아” 하는 기분이 든다.

이런 음악을 틀면
매장이 조금 더 생기가 돌아.
정리하는 손도 빨라지고,
거울을 닦는 힘도 세진다.
혼자 있을 때조차 기분이 이상하게 업된다.

손님들에게는 그냥 '옛날 노래가 나오네?' 싶은 정도겠지만,
나에겐 이게 리듬이고, 텐션이고, 에너지다.
무언가 시작할 때, ‘이 음악이면 된다’ 싶은 확신이 있다.
그게 바로 이 시대의 댄스가요다.

그래서 나의 하루는 늘 똑같이 시작된다.
스피커를 켜고,
첫 노래가 흘러나오고,
그러면 나도 다시 움직일 준비를 한다.

현실의 압박 속에서도 리듬을 지켜야 하는 이유

장사를 하다 보면 늘 그래.
어제는 괜찮았는데, 오늘은 또 안 될 것 같은 불안이 덮친다.
매출이라는 건 숫자지만,
그 숫자 하나에 온몸의 감정이 붙는다.
하루 매출이 30만 원이냐, 5만 원이냐에 따라
집에 가는 길의 기분도, 저녁을 먹는 속도도 달라진다.

월세는 날짜를 기다려주지 않고,
카드값은 제때 나가야 하고,
재고는 창고에 쌓여 있다.
그럴수록 머릿속에선 ‘오늘 이거 안 되면 큰일인데’라는 말만 맴돌지.
그 말이 마음을 갉아먹는다.

나는 그런 날일수록, 일부러 더 리듬을 놓지 않으려 한다.
음악을 끄지 않는다.
조용한 공간에 내가 멍하니 서 있게 되는 걸,
나는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기로 했다.

음악이 흐르고 있는 한,
나는 아직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니까.
설령 마음은 무너졌어도,
몸은 계속 움직이도록 스스로를 밀어내는 거다.

손님이 없어도,
음악에 맞춰 옷걸이를 고르고
매장을 한 바퀴 돌며 청소를 하다 보면
기분이 아주 조금이라도 올라온다.
‘그래도 난 이 공간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이상하게도 버틸 힘이 된다.

이 리듬이 무너지면, 나도 무너진다.
그건 매출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리듬을 먼저 챙긴다.
매출보다 앞서야 하는 건 결국 나 자신이니까.

그래도 매일 문을 여는 이유

사실 장사를 하면서 "오늘은 쉬고 싶다"는 생각,
안 해본 날이 거의 없다.
특히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오후를 보내고 나면
문을 닫고 싶다는 충동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온다.

그런데도 나는
다음 날, 또다시 매장 문을 연다.
왜냐고?
누가 정답처럼 알려준 건 아니지만,
이 공간은 결국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단골 손님이 웃으면서 “사장님~ 오늘 신상 들어왔어요?” 하고 들어올 때,
그 순간은 정말 짧지만, 그 짧은 온기로 하루가 버텨진다.
어느 날은, 내가 좋아서 골랐던 옷이 팔릴 때
“이 옷 진짜 예뻐요”라는 말 하나에
나는 다시, 내가 옷을 파는 이유를 되묻게 된다.

음악이 흐르는 매장,
정리된 옷걸이,
혼자 마시는 아이스커피 한 잔.
이 모든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한 가게의 풍경일지 몰라도,
나에겐 살아 있는 느낌이다.

내가 하루를 잘 견디면,
언젠가 이 공간이 또 나를 도와줄 거라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오늘도 문을 열고, 음악을 튼다.
큰 성공도, 대박 매출도 없을지 몰라도
나는 여전히, 내 리듬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오늘도 나는 내 리듬대로 문을 열었다

장사는 정답이 없다.
그게 가끔은 무섭고, 가끔은 위로가 된다.
누구도 내 방식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고,
누구도 내 하루를 대신 살아줄 수 없으니까.

나는 매일 음악을 튼다.
그건 매출 때문도, 고객 때문도 아니고
그저 내가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다.

누가 뭐래도
나는 오늘도 내 리듬대로 문을 열었고,
내 방식대로 하루를 견뎠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내일도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음악부터 틀어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