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국 영화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 있었습니다. 조정래 감독의 '귀향'은 우리 역사의 가장 아픈 상처 중 하나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로, 그 해 개봉된 여러 대작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시대적 배경과 이야기
1943년,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조선. 영화는 열네 살 소녀 정민의 눈을 통해 그 시대를 바라봅니다.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정민은 어느 날 갑자기 일본군에 의해 가족의 품에서 떨어져 나와,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갑니다. 이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이 아닙니다. '귀향'은 그 시대를 살아간 소녀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정민과 그의 친구들이 겪는 공포, 혼란, 그리고 희망의 순간들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잔인하고 이해할 수 없는 곳이었을 것입니다. "여기가 지옥이다"라는 대사는 그들이 처한 상황의 절망감을 강렬하게 표현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작품은 그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의 강인함을 보여줍니다. 소녀들은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상징적 요소들
'귀향'에는 여러 상징적 요소들이 등장하며, 이를 통해 작품의 주제와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합니다.
- 노리개: 정민의 어머니가 만들어 준 노리개는 안전과 보호를 상징하며, 소녀들의 절박한 상황과 심리를 나타냅니다. 또한 노리개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며, 할머니가 된 영옥이 만드는 노리개는 지속적인 기억과 내면적 치유의 과정을 상징합니다.
- 숨박꼭질: 영화의 첫 대사인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는 숨박꼭질을 연상시킵니다. 이는 소녀들의 두려움과 위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관객들에게 영화 전반에 걸쳐 불안감을 느끼게 합니다.
- 할머니와 소녀의 이미지: 영화는 의도적으로 성인 여성의 이미지를 배제하고, 할머니와 소녀의 이미지만을 보여줍니다. 이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편견을 차단하고, 그들의 순수함과 존엄성을 강조하는 상징적 장치입니다.
- 무속 의식: 영화에서 등장하는 무속 의식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상징적 역할을 합니다. 이를 통해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을 위로하고, '귀향'의 의미를 '鬼鄕'(귀신들의 고향)으로 확장시킵니다.
감독의 메시지
조정래 감독은 '귀향'을 통해 여러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 역사적 진실의 전달: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알리고자 합니다. 감독은 이를 "문화적 증거물"로 표현하며, 홀로코스트 영화와 같은 역할을 하고자 했습니다.
- 피해자들의 존엄성 회복: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성적 대상이 아닌 순수한 소녀들로 묘사하며, 그들의 존엄성을 강조합니다.
- 치유와 위로: '귀향'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는 피해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정신적 치유를 목적으로 합니다. 감독은 "한 번 상영될 때마다 한 분의 넋이 돌아온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 국제적 인식 제고: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세계 각국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10개국 61개 도시에서 1300회 이상 상영되었습니다.
- 미래 세대에 대한 교육: 감독은 특히 학생들이 이 영화를 많이 봐주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줍니다.
-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평범한 소녀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피해자들이 빼앗긴 일상의 소중함을 강조합니다.
영화의 의의와 영향
'귀향'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희망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하는 작품입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영화가 선과 악을 단순하게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본군 중에서도 소녀들을 돕는 인물이 등장하며, 이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 이들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귀향"이라는 제목은 단순히 물리적인 귀환을 넘어 정신적, 영적인 회복을 의미합니다. 할머니가 된 피해자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이어가는 강인함을 목격합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과거를 직시하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며,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줍니다.
결론
'귀향'은 우리 역사의 아픈 과거를 다루면서도, 그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희망을 발견하는 작품입니다. 조정래 감독은 섬세한 연출과 상징적 요소들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강렬하게 전달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역사의 아픔을 기억하고, 피해자들의 존엄성을 회복하며, 미래 세대에게 교훈을 전달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귀향'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과제일 것입니다.
'귀향'은 2015년 개봉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국제사회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또한,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귀향'은 우리에게 역사를 기억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는 단순히 한 영화의 메시지를 넘어,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과제일 것입니다.